단편소설 : 충장로의 빛 / 조현병 환자의 삶을 그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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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실제 공간을 배경으로, 조현병을 앓고 있는 한 인물의 내면과 일상을 그려내려고 했습니다.
주인공 ‘현승’은 단순한 허구의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실존 인물이며, 오랜 시간 그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이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현승’이라는 이름은 조현병의 ‘현’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승’을 결합해 만든 상징적 이름입니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그 병이 그의 전부는 아닙니다. 매일 충장로를 걷고, 커피숍에 앉아 노트를 펼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연결을 시도합니다.
그 모습은 정신질환자도 일상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그들의 삶 역시 존엄하고 의미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병의 기록이 아닙니다. 신과 마귀, 빛과 어둠, 고독과 연결이라는 상징을 통해, 정신질환자의 내면 세계를 문학적으로 탐색하려 했습니다. 무엇보다 조현병이 반드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병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습니다. 약물 치료는 단순히 증상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는 끈이며, 세상과 이어지는 희미한 숨결입니다. 현승이 약을 중단했을 때 재발을 경험하고, 다시 복용하며 일상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정신질환의 현실과 회복의 가능성을 함께 보여줍니다.
배경이 되는 충장로는 광주의 상징적인 거리입니다. 역사와 기억이 켜켜이 쌓인 공간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교차하는 장소입니다. 이 거리에서 현승의 싸움과 회복, 그리고 인간적인 연결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충장로의 빛은 단순한 조명이나 햇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온기와 이해, 그리고 살아내려는 의지입니다.
「충장로의 빛」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시각입니다.
이 싸움은 끝나지 않겠지만, 그 싸움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싸움 속에서도, 빛은 존재합니다.
충장로의 빛
1 아침의 길 위에서
충장로. 광주의 오래된 거리.
현승은 매일 아침 10시에 그 길을 걷는다.
51세. 검은 바람막이와 낡은 운동화.
사람들은 그를 ‘조용한 아저씨’라 부른다.
하지만 현승은 알고 있다.
이 길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리고 마귀도. 그는 걷는 동안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존재들과 싸운다.
“오늘은 네가 선택받은 날이다.”
“그 여자는 널 감시하고 있다.”
손목에 찬 알약 케이스는 그의 하루를 지탱하는 방패다.
그는 커피숍에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는다.
노트를 꺼내고, 오늘 하나님이 그에게 말한 것들을 적는다.
“오늘은 마귀가 너를 시험할 것이다. 하지만 너는 이길 수 있다.”
2 기억의 파편
고등학교 1학년. 현승은 수석으로 입학했다.
교실 안에서 그는 조용했고, 노트에 적는 글씨는 또박또박했다.
하지만 성적에 대한 압박은 그를 서서히 무너뜨렸다.
처음엔 밤에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너는 선택받았다.” 그다음엔 교실 창밖에서 손짓하는 빛.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교무실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들은 그를 병원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그는 ‘조현병’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감정은 극단을 오갔다.
세상이 자신을 향해 음모를 꾸미는 듯한 느낌.
그는 약을 먹으며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20대 중반, 그는 약을 끊었다.
“이제 괜찮아졌어. 약 없이도 버틸 수 있어.”
그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다시 목소리가 찾아왔다.
“너는 신의 사자다. 너만이 진실을 안다.”
그는 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밤중에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라고 외쳤다.
부모는 두려움에 떨었고, 형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날 이후, 가족과의 관계는 금이 갔다.
“왜 우리를 믿지 않았어?”
“넌 또다시 우리를 무너뜨렸어.”
신뢰는 깨졌고, 식탁에 앉아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지만, 그때의 상처는 약으로도 아물지 않았다.
그 기억은 지금도 충장로를 걸을 때마다 떠오른다.
그는 노트에 적는다. “재발은 마귀의 속삭임이었다.
나는 그때 약을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싸우고 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
3 그녀와의 만남
그녀는 현승이 20년 이상 외래치료 중인 정신건강의학과 대기실에서 처음 만났다.
43세. 미혼.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 화장기 없는 얼굴.
조울증 진단을 받고, 현승과 같은 날 약을 처방받는다.
그날, 현승은 진료를 마치고 약국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도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히 약을 받아든 그녀가 봉투를 들고 자리를 옮길 때, 봉투 위에 적힌 이름이 현승의 눈에 들어왔다.
“승희.”
그 이름은 이상하게 또렷하게 보였다.
짧고 단정한 글자.
그 순간, 현승은 그 이름이 귀에 맴도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익숙하고 따뜻했다.
그 후 두세 달 동안, 현승은 매달 외래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마다 그녀를 마주쳤다.
대기실에서 같은 시간대에 앉아 있는 일이 반복되었고,
처음엔 눈인사만 나누던 사이가 점차 짧은 대화로 이어졌다.
“오늘은 좀 괜찮으세요?” “네, 그냥… 평범한 하루예요.”
그녀의 말투는 조심스럽지만 따뜻했고, 현승은 그 짧은 순간들이 점점 기다려졌다.
그녀의 이름—승희—는 그의 노트에 자주 등장했다.
“오늘 승희를 봤다.
눈빛이 조금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인사할 때는 웃었다.
그 웃음이 내 하루를 조금 덜 무겁게 만들었다.”
진료가 있던 날, 병원 앞에서 마주친 그녀가 말했다.
“혹시… 근처에 커피숍 하나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현승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매주 수요일 아침.
그들은 충장로의 커피숍에서 차를 마신다.
말은 많지 않다. 하지만 서로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를 본다.
빛과 어둠. 하나님과 마귀.
현승은 그녀에게 묻는다.
“당신은… 나를 시험하러 오신 건가요?”
승희는 웃는다. “아니요, 그냥… 이 거리의 아침이 좋아서요.”
4 서로의 결핍
그녀는 아버지의 부재를 이야기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보호가 아니라 감시였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커피잔 사이로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고, 창밖의 충장로는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창밖에 두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자주 드셨어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집은 전쟁터 같았죠. 엄마는 늘 조용히 울었고,
나는 벽 뒤에 숨어 있었어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누군가 나를 지켜본다는 느낌이 시작된 게.
그 시선은 따뜻하지 않았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풍을 기다리는 기분이었죠.”
현승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고백은 그의 내면 깊은 곳을 건드렸다.
그 역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시선 속에서 살아왔고, 그 시선은 때로는 축복처럼, 때로는 저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울증이 처음 왔던 건… 스물다섯이었어요. 그땐 그냥 기분이 좋은 줄 알았어요.
밤새 계획을 세우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죠.
근데 그게 끝나고 나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몸이 무겁고, 숨이 막히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 며칠이 걸렸어요.”
현승은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상처가 고요히 숨겨져 있었다.
그는 그녀의 눈빛 속에서 자신을 보았다.
그도 한때, 세상이 자신을 향해 움직인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의 공허함을 알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신다고 믿어요. 하지만 마귀도 있어요. 늘 싸우고 있어요.”
현승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싸움, 혼자 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은 현승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닿았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병이 외롭지 않다고 느꼈다.
그녀의 상처는 그의 상처와 닮아 있었고, 그녀의 말은 그에게 작은 빛이 되었다.
그 순간, 커피숍의 소음은 멀어지고 두 사람 사이에는 조용한 온기가 흘렀다.
현승은 노트를 꺼내 적었다.
“승희는 오늘, 나의 어둠을 이해했다.
그녀의 과거는 나의 과거와 닮아 있었다.
이 싸움은 끝나지 않겠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5 취업의 그림자 그리고 안식
현승은 도서관 자료 정리 아르바이트에 합격했다.
정신재활시설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추천으로 시작된 일.
하루 4시간, 주 3일. 조용한 공간, 반복적인 업무.
그는 “괜찮을 거야.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불안은 밀려왔다.
책장 사이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너를 감시하고 있어. 너는 시험받고 있어.”
머릿속의 목소리가 다시 속삭였다.
그는 손을 떨며 책을 정리했다.
약물의 부작용이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릴 때마다, 동료 직원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괜찮으세요?” 그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 웃음은 금방 굳었다.
점심시간. 그는 조심스럽게 약을 꺼냈다.
알약을 손에 쥐는 순간, 옆자리 직원이 흘끗 쳐다봤다.
그 시선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사람, 무슨 약을 먹는 거지?’ 현승은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앞에서 약을 삼키며, 자신을 바라봤다. “이건 나를 위한 거야. 나를 지키는 거야.”
그는 그렇게 되뇌었다.
업무는 단순했지만, 실수는 반복됐다.
책을 잘못 꽂고, 분류표를 놓치고, 동료의 말에 반응이 느렸다.
팀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승 씨, 혹시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요?”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하나님과 마귀가 싸우고 있었고, 현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승은 그날 밤, 노트를 펼쳐 적었다. “나는 흔들렸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일을 한다는 건,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나는 계속 일하고 싶다. 약을 먹고, 버티고, 다시 걷는다.”
다음 날 퇴근 후, 현승은 곧장 충장로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녀는 이미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서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좀 힘들었어요?”
현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자, 손끝의 떨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는 말했다.
“일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봐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저도 그래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게, 늘 긴장되는 일이에요.
그래서 이 시간이 더 소중해요.”
현승은 창밖을 바라봤다.
충장로의 간판들 위로 저녁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는 노트를 꺼내 적었다.
“오늘은 마귀가 도서관에 있었다.
하지만 커피숍에는 없었다.
여기엔 그녀가 있다.
하나님도 조용히 계신다.
그리고 나는, 내일도 출근할 것이다.”
6 충장로의 빛
며칠째 강추위가 이어졌다.
현승은 도서관을 나서며 오리털 패딩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패딩은 낡았지만 바람을 막아줬고, 골덴바지는 무릎이 살짝 번들거렸다.
하얀 눈이 느리게, 그러나 끊임없이 흩날렸다.
손끝은 얼어 있었고,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퍼졌다.
충장로로 향하는 길. 그는 어깨를 움츠린 채 걷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눈발 속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장갑 낀 손으로 핸드폰을 붙잡은 배달원,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엄마,
서둘러 가게 문을 여는 노점상.
그리고 그 틈을 지나 걷는 사람들.
어떤 여성은 애인으로 보이는 남성의 팔에 기대어 웃었고,
남성은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눈을 조심스레 털어냈다.
그들의 발걸음은 느렸지만, 서로에게는 충분히 따뜻해 보였다.
충장로의 간판들 위로 눈이 내려앉고 있었다.
“추운 날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각자의 생활이 있고, 각자의 이유가 있다.”
현승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도 그들처럼, 오늘 하루를 살아낸 것이다.
커피숍 문을 밀자,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목도리를 두른 그녀는 현승을 보며 미소 지었다.
“밖이 정말 춥네요.”
현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자, 얼어붙은 손끝이 서서히 풀렸다.
그는 말했다.
“일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봐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저도 그래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게, 늘 긴장되는 일이에요.
그래서 이 시간이 더 소중해요.”
현승은 창밖을 바라봤다.
눈발이 조용히 충장로를 덮고,
어둠이 골목마다 스며들 무렵—간판들이 하나둘 숨을 틔우듯 불을 밝혔다.
희뿌연 눈 위로 번지는 형형색색의 빛,
그 빛이 충장로를 다시 깨어나게 했다.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꺼낸 오래된 꿈처럼, 그 거리엔 빛이 내려앉았다.
충장로가 내려않은 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노트를 꺼내 적었다.
“오늘도 마귀가 도서관에 있었다.
책장 사이에서 나를 시험했다.
하지만 커피숍에는 없었다.
여전히 여기엔 그녀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도 조용히 계신다.
나는 오늘 약을 먹었고, 그것은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내일도 출근할 것이다.
이 싸움은 끝나지 않겠지만, 나는 혼자는 아니다.”
- 다음글마음의 무게 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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