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청춘, 도박의 늪에서(청소년 도박과 심리상담의 절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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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청춘, 도박의 늪에서: 청소년 도박과 심리상담의 절실함
글: 라엘마음행복상담센터
청소년 도박, 더 이상 그림자 속 문제가 아니다
‘도박’이라고 하면 우리는 종종 어두운 지하실, 화투판, 혹은 카지노를 떠올린다. 그러나 오늘날 청소년 도박은 더 이상 특정 공간이나 연령에 국한되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확장된 도박 환경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도박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는 청소년에게 치명적인 유혹이 된다.
과거에는 청소년이 도박에 접근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제한되었지만, 지금은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 불법 스포츠 베팅 사이트, 도박 유튜브 콘텐츠, SNS상의 도박 광고 등을 통해 손쉽게 유입된다. 도박은 이제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청소년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도박에 빠지는 이유: 돈 때문만이 아니다
청소년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는 한 가지 요소일 수 있지만, 도박의 뿌리는 훨씬 더 복합적이다.
첫째, 도박은 현실에서의 무기력을 보상해주는 대리 세계로 작동한다. 성적 스트레스, 가족 간의 갈등, 또래와의 비교에서 오는 자존감의 하락 등, 청소년은 다양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이때 도박은 짜릿한 자극과 일시적인 승리감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준다.
둘째, 청소년은 충동 조절 능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다. 특히 도파민 분비에 민감한 청소년기의 뇌는 즉각적인 보상에 강하게 반응한다. 도박이 제공하는 ‘한 방’의 쾌감은 매우 중독적이다.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될 것 같다’는 비현실적 기대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셋째, 주변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가족 중에 도박 문제가 있는 경우, 청소년이 유사한 행동 패턴을 보이기 쉽다. 또 친구들이 도박을 하면 ‘놀이’처럼 따라 하기도 한다. 도박 콘텐츠를 소비하고 공유하는 문화는 그것을 ‘위험한 범죄’가 아니라 ‘재미있는 놀이’로 왜곡시킨다.
도박의 경고 신호 : 무심코 지나치면 늦을 수 있다.
청소년 도박은 종종 조용히, 은밀하게 시작된다. 아래와 같은 행동이나 변화가 보인다면, 도박 중독의 초기 신호일 수 있다.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나친 돈 집착: 용돈을 자주 더 요구하거나, 이유 없이 돈이 사라지는 경우. 부모 지갑에서 돈이 사라지거나, 소액 대출·비상금 사용이 발견되기도 한다.
비밀스러운 스마트폰 사용: 특정 시간대에 스마트폰을 몰래 보거나, 대화기록과 앱 설치 내역을 숨기려고 하는 경우.
성격 변화: 평소보다 예민해지고 짜증이 많아지며, 가족이나 친구와의 대화를 피한다. 거짓말이 잦아진다.
성적 급락과 무기력: 학업 성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는다. 결석이 잦아질 수도 있다.
도박 관련 용어 사용: 일상 대화 속에 배당률, 승부, 베팅 등 도박 용어를 사용하거나, 스포츠 경기 결과에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
사회적 관계 단절: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거나, 기존 친구들과 멀어진다. 대인기피나 방 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러한 신호는 단순한 사춘기의 반항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도박에 빠진 청소년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침묵 속에서 점점 더 위험한 상황으로 나아간다.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것이 필수다.
한국 청소년 도박의 현황 : 보이지 않던 문제가 수면 위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청소년 도박 관련 상담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10대 후반 남학생의 불법 스포츠 도박 참여율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점은 도박에 처음 노출되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부터 온라인 게임을 통해 도박의 구조를 학습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청소년 도박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단속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도박 사이트는 단속을 피하며 계속해서 새로 생기고, 해외 서버를 통해 접근이 가능하다. 정부의 규제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하는 도박 환경 속에서 청소년은 아무런 방어 장치 없이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게임 산업과 도박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뽑기 시스템, 룰렛 이벤트는 도박과 유사한 구조로 작동한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도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고, 실제 도박으로의 전이를 쉽게 만든다.
피해 사례: 잃은 것은 돈이 아니라 삶 전체였다.
한 고등학생 A군은 온라인 스포츠 베팅 사이트를 통해 도박에 빠졌다. 처음에는 게임 아이템을 팔아 번 돈으로 시작했다. 몇 번의 ‘우연한’ 성공이 A군에게 자신감을 심어줬고, 더 큰 돈을 걸기 시작했다. 결국 부모님의 신용카드를 몰래 사용하며 수백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고, 발각된 후에도 도박을 끊지 못했다. A군은 퇴학당하고,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이후 자살 시도까지 했지만 다행히 생명은 건졌다.
또 다른 사례로, 중학생 B양은 SNS에서 만난 또래 집단을 통해 도박에 입문했다. 룰렛 게임과 슬롯머신이 포함된 웹사이트 링크를 공유받고, 처음엔 소액의 용돈으로 시작했다. 점점 베팅 금액이 커지고, 패배를 만회하려고 학급 친구들에게 돈을 빌렸다. 결국 부모와의 신뢰는 무너졌고,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전학까지 가게 되었다.
이러한 피해는 단지 금전적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청소년기의 도박은 자아 정체감 형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며, 장기적으로 우울증, 불안장애, 충동조절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인간관계가 붕괴되고,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고립과 청소년의 심리적 취약성
청소년기는 관계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고 사회성을 배워가는 시기다. 그러나 도박에 빠진 청소년은 부모, 교사, 친구와의 신뢰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게 된다. 반복적인 거짓말, 숨기기, 부채 문제는 관계를 파괴하고, 결국 그들은 고립된다. 이 고립은 단순히 외로움이 아니다. 정서적 지원이 사라진 환경은 도박이라는 ‘위험하지만 위안이 되는 활동’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심리적으로 지친 청소년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이곳뿐’이라는 왜곡된 확신을 갖게 되고, 자신을 도박의 세계에 고정시킨다. 또한,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과 중심’의 사고방식이 강하다. 성적, 외모, 경제력 등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청소년은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자신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도박은 그들에게 ‘빠른 성공’과 ‘즉각적인 인정’을 제공하는 환상을 주지만, 그 끝에는 늘 깊은 추락이 기다린다.
심리상담, 잃어버린 감정을 회복하는 통로
도박은 단순한 행위 중독이 아니다. 그 안에는 충족되지 못한 감정, 해결되지 않은 불안, 무시당한 자존감이 숨어 있다. 청소년 도박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도박 행위를 끊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왜 도박을 선택했는지, 어떤 감정을 감추고 있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아야 한다. 심리상담은 청소년이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불안을 인식하게 하고, 그것을 말로 풀어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한다. 상담을 통해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고, 도박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대안을 찾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상담자는 청소년에게 ‘무조건적인 수용’의 경험을 준다. 실패해도 괜찮고, 실수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경험은 청소년에게 근본적인 치유를 제공한다. 가족 상담 역시 필수적이다. 많은 경우 부모는 문제를 ‘통제’하려 하지만, 청소년은 그 과정에서 더 큰 반발심을 느낀다. 상담은 부모와 자녀 간의 감정적 연결을 회복시켜, 공동의 해결책을 찾도록 돕는다.
마무리하며
청소년 도박은 더 이상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 속 어디에나 존재하는 도박의 그림자는 조용히, 그러나 깊숙이 청소년을 삼켜들고 있다. 이 문제는 도박 사이트를 없애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왜 그들이 도박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묻고, 감정의 결핍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대 사회는 빠른 성공과 경쟁을 부추기지만, 그 속에서 상처받은 청소년은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간다. 도박은 그 고립된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말해야 한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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